Faith Journey

믿음의 여정

조종석에서 십자가 앞으로 — 한 목사가 만들어지기까지.

눈 내린 숲, 빛나는 옷장 앞의 조종사

교회 밖에서 시작된 이야기

강영훈 목사는 교회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신앙이라는 말이 식탁에 오르지 않는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자랐고, 물려받을 신앙의 유산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붙들게 될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 위에서 만난 질문

그의 젊은 날을 이끈 것은 신학이 아니라 절제와 사명감이었습니다.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F-5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 정밀함과 통제, 상승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나는 조종석도 상실의 중력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가까운 동료들이 훈련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 죽음들은 그의 안에서 무언가를 깨뜨려 열었습니다. 그때 밀려온 질문은 전술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 슬픔과 혼란의 한가운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습니다. 극적인 회심의 순간이 아니라 천천히 돌아서는 시간이었습니다 — 그토록 찾던 삶의 의미는 성취나 계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 가는 시간.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은혜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온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임재로 왔다고.

광야 — 이민자의 사막

2010년, 강영훈 가족을 맞이한 미국은 이민 안내 책자 속의 기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는 장교였고 조종사였고 어디서나 인정받는 사람이었지만, 텍사스 엘패소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집요했고, 문화의 단절은 전면적이었습니다. 신분과 능력과 소속을 나타내던 모든 표지가 벗겨져 나가는, 정체성의 상실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곳이 그의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그 광야는 시간이 지나며 그의 생애에서 가장 깊은 영적 형성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민의 사막에서 그는 성경이 말하는 유배가 무엇인지 몸으로 배웠습니다. 아브라함과 룻과 바벨론 포로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고대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깊이 일하시는 자리는 성공의 산꼭대기가 아니라 상실의 골짜기라는 것을, 그는 그곳에서 깨달았습니다.

예일에서 다듬어진 목소리

그의 신학의 목소리가 또렷해진 것은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였습니다. 그의 신학은 은혜가 중심에 있고, 논쟁보다 목양에 가까우며, 체계보다 이야기로 말합니다. 그가 성경을 유배와 이방인의 눈으로 읽는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부르심

강영훈 목사의 믿음의 여정은 어디로 가는지 늘 알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슬픔을 지나, 유배를 지나, 침묵을 지나, 천천히 쌓여가는 은혜를 지나 — 계획할 수 없었던 자리로 이끌려 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F-5 전투기의 조종석에서 뉴멕시코 교회의 설교단까지, 그 길을 관통한 것은 야망이 아니라 내려놓음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곳에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곁에서 설교합니다 — 길을 잃어 본 사람으로, 찾아진 사람으로, 그리고 그 찾아주심이 결코 멈추지 않음을 아는 사람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귀하고,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지금 이순간도,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