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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The Mandate to Love

강영훈 목사
세족목요일 · Year A · 2026년 4월 9일
요한복음 13:1–17, 31b–35 (개역개정)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 · 사순절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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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목요일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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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목요일을 가리키는 영어 이름 Maundy는 라틴어 만다툼(mandatum) — 계명 — 에서 왔습니다. 이 밤은 명령의 이름을 지닌 밤입니다. 제안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라는 초대가 아닙니다. 십자가 전 마지막 밤, 다락방에서 주어진 명령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무엇이 명령되었는지 들으려고 — 그리고 우리가 들은 그 일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물으려고 — 모였습니다.

제자들은 유월절을 지키러 모였습니다. 종살이에서의 탈출과 쟁취된 자유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때가 이르렀음을 아십니다. 몇 시간 안에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앎 속에서 — 자신의 정체와 자신의 목적지를 온전히 의식하신 채 —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하십니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 요한복음 13:3–5 (개역개정)

헬라어 한 단어가 중요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휘포데이그마(hypodeigma)를 주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 도덕 교훈이나 감동이 아니라, 본떠야 할 본(本), 되풀이해야 할 틀입니다. 모든 권세를 쥐신 분이, 그 권세가 그분의 나라에서 어떤 모양을 취하는지 보여 주고 계십니다. 무릎 꿇은 종의 모양입니다.

베드로가 저항합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 오만이 아니라 충정, 주님이 제자들의 발치에 계셔서는 안 된다는 직감.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분의 나라에 속한다는 것은, 권세가 사랑을 만나면 무릎 꿇기를 택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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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rble relief sculpture in the style of Michelangelo depicting Jesus kneeling to wash a disciple's feet. Jesus pours water from a clay vessel into a basin while the disciple sits on a wooden stool, his expression a mixture of reverence and unease. The Latin inscription along the base reads 'Mandatum Novum Do Vobis' — I give you a new commandment.
Mandatum Novum Do Vobis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그리고 새 계명이 옵니다. 옛 율법의 수정이 아닙니다. 사랑이 늘 뜻해 온 바의 해설이 아닙니다. 새 계명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34–35 (개역개정)

그 척도는 같이입니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에게 쉽고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를 비우는 사랑. 무릎 꿇는 사랑. 십자가로 가는 사랑. 이 계명이 새것인 이유는, 그 척도가 이전에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자기 내어줌.

이것이 제자 됨의 표지입니다. 무엇을 믿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교리를 암송하느냐가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보고 우리가 그분의 제자인 줄 알 것입니다. 그분이 사랑하신 것 같이 — 십자가의 모양으로, 부어져, 아무것도 되받기를 구하지 않고 — 사랑하기를 배웠는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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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우리는 이 식탁에 둘러설 것입니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수건과 대야가 이 식사에서 사라지게 두지 마십시오. 떡은 찢기신 그분의 몸입니다. 잔은 흘리신 그분의 피입니다. 이 식탁은 발 씻김이 뜻했던 것만을 뜻합니다 — 부어진 사랑, 바닥에 닿은 무릎. 그 명령은 그대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응답하겠습니까? 언젠가가 아니라. 사랑이 쉬워질 때가 아니라. 지금 — 우리의 이웃들과,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과, 우리가 용서하도록 부름받은 이들과. 우리는 사랑받은 것 같이 사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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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예수님, 오늘 밤 우리는 수건을 손에 들고 무릎 꿇으신 주님을 봅니다. 우리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닮지 못했는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정죄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 본을 받으러 왔습니다 — 섬기는 사랑, 무릎 꿇는 권세, 다른 이를 위해 자기를 비우려는 마음 위에 세워진 나라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기를 가르쳐 주십시오. 큰 몸짓만이 아니라, 날마다의 용서의 일에서, 고난받는 이들 곁의 한결같은 머무름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알려지는 제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밤 먹고 마실 때, 일깨워 주십시오. 주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을.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떼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도 서로에게 같은 일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 세족목요일, Year A · 2026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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