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형상」
성전에서 놓은 덫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이제 그들은 덫을 놓습니다.
마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말로 트집을 잡아서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할까 의논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동사는 풀숲에 숨겨 둔 새잡이의 올무를 가리키고, 마태는 미끼가 무엇인지도 밝힙니다. 말입니다. 그들은 문장 하나로 그분을 잡으려 합니다.
그들은 거의 아무것에도 뜻이 맞지 않는 두 무리를 보냅니다. 로마의 세금을 분하게 여기던 바리새파의 제자들과, 로마의 호의에 권력을 기대고 있던 헤롯 당원들입니다. 한 상에 앉을 수 없던 두 당파가, 과녁 하나는 함께 겨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러고는 칭찬으로 말문을 엽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마태복음 22:16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참말입니다. 그날 하루 예수님에 관해 누가 한 말 가운데 가장 참된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말을 한 마디도 진심으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가려 대하지 않는 이라면, 방 안의 어느 한쪽을 잃을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질문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마태복음 22:17
옳지 않습니까. 옳다고 하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군중에게 그분이 점령군 편을 든다고 말할 것입니다. 옳지 않다고 하면, 헤롯 당원들이 총독에게 그분이 반란을 선동한다고 고할 것입니다. 이 세금은 이미 유대에서 사람 목숨을 앗아 간 세금입니다. 온 땅에서 가장 위험한 질문을, 그들은 성전에서 던집니다.
그들 주머니 속의 동전
예수님은 그것을 그대로 이름하십니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그러고는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무언가를 달라고 하십니다.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보아라.
그분에게는 그 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말보다 먼저 몸짓에서 돌아섭니다. 이 동전을 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 뜰에서, 제 돈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닢을 꺼냅니다. 그들은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께 가져다 드렸다. 마태가 가져다 드렸다에 쓴 동사는 제단에 예물을 가져올 때 쓰는 바로 그 동사입니다. 성전 안에서 앞으로 내민 예물인데, 그 위에 엉뚱한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동전에는 아마도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있었을 것이고, 라틴어로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 적혀 있었을 것이며, 뒷면에는 대제사장이라 적혀 있었을 것입니다. 작은 은 조각 하나가 종교적 주장을 한꺼번에 둘이나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입을 떼시기도 전에 질문은 이미 답을 얻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황제의 돈에 대해 무어라 말하든, 그들은 그 돈을 지니고 다닙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이 장면을 남들에게 놓인 덫으로 읽었습니다. 이번 주에 저는 그 돈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저도 그 돈주머니를 압니다.
그리고 덫을 튕기는 질문이 옵니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이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그들은 대답해야 하고, 그 대답에 치르는 값은 한 마디입니다. 황제의 것입니다.
돌려주어라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마태복음 22:21
그리스어의 작은 낱말 둘이 이 문장 전체를 떠받칩니다.
첫째는 동사입니다. 그들은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낱말로 답하십니다. 돌려주어라. 마태가 빚을 갚는 데 쓰는 동사입니다. 그 동전은 황제에게 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의 대답대로, 그것은 이미 황제의 것입니다. 그러니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황제의 권리는 실제로 있는 것이고, 그 크기는 동전 한 닢만 합니다.
둘째는 우리 성경이 초상이라고 옮긴 낱말입니다. 동전 위의 것이라면 초상이 맞는 우리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낱말은 에이콘, 곧 형상이고, 그 뜰에서 그리스어로 성경을 알던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그 낱말을 맨 첫 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27
이것은 누구의 형상이냐? 동전 위의 것은 황제의 형상입니다. 그러니 동전은 황제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면 여러분 위에는 누구의 형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둘째 질문을 소리 내어 물으신 적이 없습니다. 논리는 그렇다면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분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니 그분의 것이고, 그러니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장의 뒤쪽 절반에도 똑같이 흘려보내 보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분은 글자에 대해서도 물으셨습니다. 이번 주일 본문 한 장 앞에서, 이사야는 누군가가 손에 ‘주님의 것’이라고 쓰는 날을 봅니다. 형상, 그리고 이름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 위에 물로, 증인들 앞에서 쓰인 그 아침을 부르는 오래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세례라고 부릅니다.
마태보다 백 년 남짓 뒤에 테르툴리아누스는 이것을 한 줄로 적었습니다. 황제에게는 황제의 형상, 곧 동전 위의 것을 드리고,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형상, 곧 사람 안에 있는 것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균형이 잡힌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동전은 두 손가락 사이에 집을 수 있는 작은 물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 나라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공정한 분할로 듣기는 쉽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갖고, 정부는 나머지를 갖는다는 식으로요. 이번 주일의 다른 본문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편은 노래합니다.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지만, 주님은 하늘을 지으신 분이시다. 히브리어는 여기에 말장난을 걸어 둡니다. 엘로힘, 신들. 엘릴림, 헛것들. 두 낱말은 거의 운이 맞습니다. 두 실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신의 아들이라 부르는 동전에 대한 시편의 논평이 그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고레스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던 페르시아 황제에게 말씀하시며 그를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사람, 훗날 메시아가 될 바로 그 낱말로 부르시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고서 하나님은 그에게 두 번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지만. 고레스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끝내 그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주다,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통치자는 없고, 아무리 쓸모 있는 통치자라도 하나님의 동업자나 하나님의 경쟁자나 메시아인 통치자는 없습니다. 이사야의 고레스는 우리 시대에도 이 지도자 저 지도자를 축복하는 데 끌려 나왔습니다. 본문은 그 무게를 지지 않습니다.
황제의 작은 권리는 하나님의 큰 권리 안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동전이 손 안에 놓이듯이 말입니다. 그것으로 통치자가 문장의 뒤쪽 절반에까지 손을 뻗는 날의 답도 정해집니다. 교회는 그 답을 이천 년 동안 알아 왔고, 그 값을 치러 왔습니다. 황제가 동전은 가질 수 있습니다. 황제가 여러분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 같은 계절에, 모든 문장이 집어 올려져 휘둘리는 때에, 누가 걸어 나갔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탄복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남겨 두고 떠나갔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 저항하던 이들과 타협하던 이들, 둘 다입니다. 그분은 어느 쪽에도 그들이 들으러 온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양쪽에 같은 답을 주셨습니다. 동전은 작고, 여러분은 동전이 아니라는 답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자기네 동전이 황제를 기리던 도시에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버린 것은 시민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예배였습니다.
여러분이 지닌 형상
그리고 여기서 영리한 대답이 기쁜 소식으로 바뀝니다.
황제의 형상을 지닌 것이 황제에게 속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것은 이 방 안의 모든 사람이고, 로즈웰의 모든 사람입니다. 이 가을에 여러분이 사랑하기 가장 어려운 그 이웃입니다. 그 형상은 벗겨지지 않습니다. 동전은 긁혀 지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기신 것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어떤 동전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 성전 뜰에 와서 서서,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라고 바울은 예수님에 관해 쓰게 될 것입니다. 동전 위의 얼굴은 제 동전이 신의 아들이라 부르던 한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들여다보던 얼굴은 하나님의 아들의 것이었습니다. 보여 줄 동전 한 닢 없던 분, 며칠 안에 십자가 위 머리맡에 당신 몫의 글귀가 붙게 될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문장의 뒤쪽 절반은 앞쪽 절반 위에 얹힌 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두어들이시는 동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지으신 형상이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실 때 단 한 번도 거기서 당신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형상은 그분의 것이고, 그것이 여러분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는 아직 여러분과 끝나지 않았습니다.
맺는 기도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어느 통치자가 동전을 찍어 내기도 전에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세례의 물로 우리 위에 주님의 이름을 쓰셨으며, 그 닮은 모습이 지워지도록 한 번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도시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정직한 손을 주십시오. 빚진 것을 갚고, 다스리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께 속한 사람답게 투표하고 말하고 듣게 하십시오. 이 계절의 두려움과 분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이들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도록 우리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지닌 형상의 주인이신 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기쁘게 돌려드리게 하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